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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171. (한림사람들)

작성자 : 도재국 작성일: 2015-12-06 조회 : 448회
★171. 자연스럽지 못한 지명인 천황산(天皇山)은 버려야 한다




2015. 12. 4 국가지명위원회의 이상한 지명 심의 결과를 접한 후에

11명의 위원이 천황산(天皇山)을 찬성한 결정에 경종을 울리고

밀양시민과 전 국민에게 김해시 한림면민들의 훌륭한 뜻을 알리기 위해서

밀양광장에 오래 전에 저(도재국)가 올린 글을 다시 끌어와서 게재를 합니다

즉, 천황산(天皇山)을 지지한 11명의 국가지명위원회 위원은 이 글을 보시고

한민족(韓民族)의 일원으로서 나라 사랑하는

김해시 한림면민들의 훌륭한 뜻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다시 올립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남한과 북한의 수 백만명의 민족이 중경상으로 불구자가 되고, 또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에 더하여 헤아릴 수 없는 재산이 잿더미로 변했고


한국전쟁에 참전, 남한과 북한을 지원했던 외국군대도 수많은 피를 흘렸고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르기의 극한 대립의 해소는 전쟁 60년이 지났어도 끝나지 않았고

그 분단의 피해는 7천5백만 민족을 자손대대로 고통스럽고 암울하게 하고 있다





내(도재국)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랜 기간 담당했던 업무 중의 하나가 병무 업무였다

불행한 과거가 있었지만, 2012. 6. 30부로 지방공무원법령에 의거

39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공무원 정년퇴직을 했고, 그 정년퇴직의 증서까지 받았다





그 오랜 세월, 가장 오랜 병무업무를 보던 중에, 나는 3대독자사유로 방위소집 영장을 받았다

영장을 받아 들고 고향에서 방위소집을 하는 것보다 육군에 현역병을 지원하려고

병무청에 여러 번 알아 보았으나, 병역법에 의해 현역병을 갈 수가 없어 6개월 방위복무를 했다

나의 방위군번은 92785205이다


그 당시 방위를 "×방위"라고 사회적 조롱거리로 별명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법에 의거 현역병 복무가 되지 않아 국가에서 방위병으로 복무를 명한 것이다






방위를 쓴 사람 중에는 국가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훌륭한 농어민, 회사원, 노동자, 공무원, 국회의원, 장관, 판사, 검사, 변호사, 차관, 선생님 등등 사회 각계각층에 수없이 많다





나는 병역법상 5년 정도 연기를 하여, 방위복무영장을 병무청으로부터 받고서도

군복무 명령에 불응하는 사람들을 찾고, 입영을 독려하기 위해서

경북 예천과 서울, 울산, 진해 등등 전국을 돌아다녔다

5년 정도 연기한 것은 나의 뜻이 아니고,

2대이상 독자는 5년 정도 연기를 한 후에 방위입영통지서가 발부되었다

즉, 2대 이상 독자는 5년 정도 사이에 남자 형제가 태어나면,

방위대상에서 현역대상으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병무업무를 보면서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하여,

정예병 선병(選兵)은 국토방위를 지원하는 병무담당 공무원의 바른 자세라 여겼다





한 번은 울산의 어두운 한 골목에서 군입영에 불응하는 사람을 설득시키려다

입영 불응자를 옹호하는 검은 무리들로부터 한 밤에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위기를 당하면서도

나는 그 사람과 부모를 설득시켜 결국은 39사단에 입영시켰다





또 내가 방위를 설 때

내보다 5살이나 적은 방위 선임자들은, 내가 자기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서류를 잘 만들어 주었으면

자기들이 방위복무를 하지 않을 텐데, 내가 자기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방위를 서게 되었다고

그들이 복무하는 평촌부대에 들어오라고 중대본부에 복무하는 나를 시도때도 없이 협박하며 괴롭혔다

그들의 엉터리 서류 작성 요구에 공무원은 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공무원 근무 신조였고,

39년동안 나의 신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의 방위복무를 마치고 공무원으로 복직했다





나의 공직생활 내용을 자랑하기 위해 적는 것이 아니다

불행했던 과거를 무릅쓰고까지 적는 이유는

한민족(韓民族)에게 고통을 주는 천황산(天皇山) 명칭을 없애기 위한

공감대를 얻기 위한 글의 단초를 적는 것이 목적이다






남.북한이 극한 대립을 하고 있던 70년대 후반부터 수 년동안 맡은 병무 업무 중에

현역병 징집과 방위병 소집 업무, 예비군 업무는 국가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국방의 지원 업무였다





현역병 징집 업무는 본적지 읍.면에서 처리하고, 본적지 지방병무청에서 관리하고

방위병 소집 업무는 주소지 읍.면에서 처리하고, 주소지 지방병무청에서 관리하고

동원예비군 업무는 주소지 읍.면에서 처리하고, 군부대와 주소지 지방병무청에서 관리하고

일반예비군 업무는 주소지 읍.면에서 처리하고, 군부대가 관리했다





이로 인하여, 내가 부산지방병무청에 징병검사 또는 병역 대사 작업 등으로 출장을 가면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몇 일씩 병역대상자 대사 작업 등을 했고

병역자원이 적은 면 단위의 병무담당자는 어떤 때는 한나절 또는 하루만에 일을 끝냈으나






병역자원이 경남에서 제일 많은 밀양읍과 김해읍의 병무 담당자는

병무청 부근의 여관에 방을 잡고 몇날 몇일씩 병무청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고

이래서 나(도재국)는 이골이 나도록 병무청에 출장을 다녀,

병무청 입구의 수위 아저씨와 직원들 대부분이 앞면이 있어 구면이 되었다






어떤 때는 여러 시.군이 같이, 또 한 사무실에서 작업을 할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밀양군은

밀양읍, 삼랑진읍, 하남읍,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 단장면, 상남면,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이 있었고,

또 각 읍.면별 병무 담당자가 출장을 같이 갔다





또 김해군은

김해읍, 진영읍, 주촌면, 진례면, 이북면, 생림면, 상동면, 대동면 등이 있었고

또 각 읍.면별 병무 담당자가 출장을 같이 갔다





병무청의 담당자가 각 시.군의 읍.면 담당자의 얼굴과 이름 등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기에

각 시.군의 읍.면별 명칭을 부르면서 담당자를 점검을 하거나

사람을 찾을 때도 읍.면의 명칭을 부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밀양군의 읍.면 병무 담당자가 참석했는지 여부를 점검을 할 때는

『밀양읍, 삼랑진읍, 하남읍,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면, 단장면, 상남면,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을

읍과 면을 생략하고

『밀양, 삼랑진, 하남, 부북, 상동, 산외, 산내, 단장, 상남, 초동, 무안, 청도』로 호칭했다





또 김해군의 읍.면 병무 담당자가 참석했는지 여부를 점검을 할 때는

『김해읍, 진영읍, 주촌면, 진례면, 이북면, 생림면, 상동면, 대동면』등을

읍(邑)과 면(面)을 생략하고 『김해, 진영, 주촌, 진례, 이북, 생림, 상동, 대동』로 호칭했다





예를 들면,

몇 개 시.군의 읍.면의 병무 담당자가 같은 사무실에서 합동작업을 할 때


병무청 직원이 읍.면 병무 담당자의 얼굴과 이름을 잘 모르니까

『어느 읍.면에서 온 (병무) 담당자입니까?』라고 묻는 것을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을 때가 종종 있었다





밀양군의 “산내면”에서 왔다면 『“산내”서 왔습니다』

밀양군의 “단장면”에서 왔다면 『“단장”서 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역병 징병원부와 방위병 소집원부가 읍.면별로 되어 있었고

병무 업무 작업의 단위가 그런 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런 단위로 점검과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어느 병무청 직원이, 김해군의 어떤 면(面)에서 출장 온, 어느 직원에게

어디서(어느 面) 온 직원인지, 또 이름도 잘 모르기 때문에

○ 병무청 직원 : 『어디서 왔습니까 ?』

○ 이북면 직원 : 『"이북"서 왔습니다』

○ 병무청 직원(생각) :

“이북”은 그 당시 김해군의 읍.면 행정명칭 직제에 있고, 또 맞는 명칭인데,

"결국은 의아스러웠을 것이었다 ??????????????"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는 1970년대 말, 그 당시 대한민국의 반공 정부가

(지금도 국가보안법 등으로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치고 있지만)

호시탐탐 북괴의 남침 위협을 받으면서

식량 증산과 새마을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그 시절 그 세상에





다른 사무실도 아닌, "병무청 사무실"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러웠으나

지명(면.面의 명칭)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런 식의 대화는 병무청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을 것이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는 시절

“이북서 온 사람이라면, ”이북면의 지명의 유례“는 모르고

김해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김해 외의 불특정 지역과 협의의 사무실 등에서, 그런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또 서로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이상하게 취급받았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지금 추측하면

옛날 김해군에서 군단위 체육대회를 했을 것이고

그럴 때면 운동장 등에 읍.면별로 크다란 텐트를 치고 운동회를 했을 것이다

읍.면별로 집단으로 응원을 했다고 보면

이북면 선수들이 출전하는 운동에서

"이북면 주민들"은 "이북 이겨라" 라고

이북면에서 온 주민들과 이북면 주민들에 호의적인 출향인 등은


운동장이 떠나갈 듯이 외쳤을 것이다

그 당시 국민(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그런 상황은 연출되었을 것이다






이북면(二北面 : 二北)과 이북(以北)은 한자어는 다르지만

들리는 소리는 같았다





지금은 "북한"이라 많이 부르지만

그 당시 우리 사회는 북한을 "북괴 또는 이북"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불렀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북면이 한림면으로 면의 명칭을 변경하기 전의 일을 상상해 본다

김해군민과 이북면민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 사상적으로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면의 명칭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본 것 외는 다른 어떠한 생각도 없다




그 당시 이북면민들은

38선 이북의 이북과 관련하여, 매우 부자연스러운 면(面)의 명칭이었기에

면(面)의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본다

그 당시 이북면민들의 투철한 반공정신에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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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를 보면)

한림면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림면은 가락국의 수도인 옛 김해부 북쪽의 한 고을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 후기부터 하북면으로 명명되어 왔었고,

그 이후 조선시대 말 1896년에 상북면(上北面)과 하북면(下北面)으로 분리되었으나,

1914년 다시 병합하여 이북면(二北面)이 되었다.





이북면은 북쪽에 위치한 두개의 면이 합하였다고 부쳐진 이름인데

이북이란 발음이 자연스럽지 못하여 1984년에 한림면(翰林面)으로 개칭하여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림이란 명칭은 중심마을인 한림정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는 조선 초 문신인 김계희(金係熙)가 단종이 쫓겨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화포천변 한적한 곳에 정자를 짓고 한림정(翰林亭)이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림면은 김해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 하남읍과 접하고, 서쪽으로 진례면,

남쪽으로 생림면과 김해시 삼계동, 서북쪽으로 진영읍과 창원시 대산면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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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다른 인터넷에 보면

"이북면"을 "한림면"으로 변경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북면”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한림면”으로 변경했다』는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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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가장 기피하는 추악한 이름은 일본의 천황(天皇)이고,

연관된 지명이 천황산(天皇山)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거 김해군의 이북면은

북쪽에 있는 두 개의 면을 하나로 합쳤다는 뜻에서 "이북면(二北面)"이라 했지만

우리 민족의 남북분단의 아픔을 고려하여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북면(二北面)"을 안타깝게도 버렸다






김해군의 이북면 사례를 본다면

천황산(天皇山)이 설령 일제와 관련이 없다해도 당연히 버려야 할 지명이다







그러나 다음 카페 밀양광장에 올려져 있는 재악산(載嶽山) 산명의 수많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를 본다면

또 일제와 관련된 증거가 있는 천황산(天皇山)을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천황산(天皇山)을 일제와 관련이 없다 하면서

천황산(天皇山)을 고수하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 본다






최근 인터넷에 보면, 천황산을 고수하는 어떤 사람이

『밀양시가 1995년도에 천황산을 다른 이름[재약산((載藥山)]으로 바꾸려고 하다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 천황산을 재악산(載嶽山)으로 바꾸려 한다』 하면서, 밀양시를 비아냥거리고 있다






즉, 『밀양시가 추진하는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으로 산 이름을 복원하려는 민족적 운동"』에

『천황산을 고수하는 어떤 사람은 "밀양시가 또 일제(日帝)의 천황(天皇)과 결부하여 천황산(天皇山) 타령한다"고 비아냥 거리고 있다』






36년간 일제의 모진 식민지 탄압을 받았던 우리 민족에게는

1950. 6. 25 발발한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피해를 입었고

우리 민족에게 천황(天皇)과 천황산(天皇山)은 분명 자연스럽지 못한 이름일 뿐만 아니라

천황산(天皇山)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함부로, 제 마음대로, 억지로 개악(改惡)한 산 이름이다





재악산(載嶽山)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산 이름이다


재악산(載嶽山)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산 이름으로

신라시대부터 불려져 온 산 이름이고

그 역사적 근거가 수없이 많으며, 그 증거도 수없이 많다





존재 가치가 없는 자연스럽지 못한 천황산(天皇山)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일제는 이 천만명의 우리 조선과 민족을 침탈한 것도 모자라

반성과 사죄는 커녕, 지금도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빼앗기 위해 온갖 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민족의 산 이름인 재악산(載嶽山)을 하루빨리 복원시켜야 한다

여기에 어떠한 이설도 주장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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