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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 문화재명추화산성
  • 분류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도기념물제94호
  • 수량(면적)90,970㎡
  • 소유자밀양시
  • 관리자밀양시
  • 소재지밀양시 교동 산9번지외31필지

소개

추화산성(推火山城)은 추화산의 8부 능선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퇴뫼식 산성으로 그 둘레는 약 1,430m이다. 이 산성은 밀양시내 영남루의 북쪽 약 3km 지점으로 성 아래 동북쪽에는 밀양에서 경북 청도쪽으로 통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다. 이 지점의 서쪽에 밀양시내로 흐르는 남천강(南川江: 일명,凝川)과 경부선 철도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추화산성은 밀양시 중심부 초입의 요충지에 위치하는 셈이어서 당시의 성곽으로서는 최적지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밀양은 양산, 언양, 김해, 영산, 청도에 둘러싸인 내륙지방으로 낙동강 입구에서 청도, 대구를 잇는 노상에 위치하여 왜(倭)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간의 전투,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의 난(三別抄의 亂)으로 인해 밀양지역이 관련되면서 이 산성이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건치연혁조(建治沿革條)에 보이는 밀양의 옛이름이 추화군(推火郡)이었다는 사실은 추화산성의 이름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이 성은 밀양시의 문화재 정비계획에 따라 1990년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성의 구조는 동.서.남에 문지(門址)를 두었으며 북쪽으로 계곡진 평지에는 우물, 연못, 부속건물 등을 배치하였다. 성벽은 석축부분이 많고, 토석혼축(土石混築) 부분은 적은 편이며 축조수법이 경사면의 기단부는 내탁(內托)하고 상단부는 협축(夾築)하는 순서를 취했다. 토석 혼축 부분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양측에 석축을 쌓고, 그 속에 흙을 채워 다져넣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편과 토기편이 대부분이며, 자기편은 분청자기가 제일 많았고 건물지에서 백자편도 수습되었다.

성 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특징으로 보아 신라말 또는 통일신라 초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초기까지 주로 사용되었으며 봉수대(烽燧臺)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용된 듯하다. 추화산성은 초기에는 추화군의 치소(治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읍성(邑城)이 현재의 밀양시내에 축조되면서부터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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