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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리 오층석탑(小台里五層石塔)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밀양시 청도면 소태길 36-52
문의처
밀양시
소개
이 탑은 전형적인 방형의 신라탑과는 달리 단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기단(基亶) 구성의 형식이 독특하고 탑신(塔身)에서도 특색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단은 1단이면서도 4장의 장대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2구씩 새겼다. 윗면 중앙에는 별도의 돌을 얹어 탑신 괴임을 3단으로 조성하였으며 그 윗면은 낙수면(落水面)처럼 경사져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몸돌·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은 각 모서리에 두툼한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높이가 매우 높다. 이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도 크게 줄고 기둥 조각도 훨씬 좁아졌다. 지붕돌은 처마 끝이 위로 들린 정도가 경쾌하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네 귀퉁이에는 독특하게도 작은 연꽃무늬 조각이 있으며 그 가운데 방울장식을 달았던 듯한 큼직한 구멍이 있다. 탑의 머리에는 장식을 받치는 노반(露盤)과 철로 만든 기둥의 한 끝만이 남아 있다. 탑신부의 첫째층 옥신(屋身)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반면 다른 옥신과 옥개석은 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옥신은 층 옥신만 유난히 높을 뿐 2층 이상은 비교적 체감율이 적은 편이다. 옥신석에는 모퉁이 기둥(隅柱)만 새겼을(模刻)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옥개석은 아래에 각 층 모두 3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낙수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데 전각(轉角)에서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옥개의 합각부(合角部)에는 풍경(風磬)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뚫려져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연판문(蓮辨文)이 새겨 놓았다. 1919년 3월에 상륜부에서 가로 60cm 세로 40cm의 백지에 반초서로 묵서한 “당탑조성기(堂塔造成記)”가 발견되어 탑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고려 예종 4년(1109)이라고 작성된 당탑조성기(堂塔造成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乾統玖年 三月九日記 至今二百六新龍二年良中律業皇龍寺沙門惠照亦住持爲乎矣亦中同寺依紙中大師學先亦至今八壬午年入寺火香爲只丁亥年元發心爲只金堂一間佛坐卽造石塔五言幷新造鍮銅弁六十二斤金堂塔各帑香爐香盒幷柒捌斤五兩鐵物一千百斤三寶內鍮鏡一入十一斤弁以施行綠由住持主法顯儀中大師學先玆上幸沖次幸先次應連次元選等亦造成日施行同寺傳住持尙資法護中大師住持甘年“이라고 이두문자(吏讀文字:傍點)를 혼용하여 기록했다. 조성기를 작성한 건통(乾統) 9년의 건통은 요(遼)나라 천조제(天祚帝)의 연호로 고려 예종 4년(1109)에 해당된다. 당탑조성기(堂塔造成記)에는 신라 효공왕 8년 (新龍 2)에 황룡사의 사문 혜조가 이 절의 주지로 있었다는 것과 또 황룡사에 있던 중대사 학선이 8년 전에 이 절의 주지로 와서 예종 2년(丁亥 1107) 정월에 발심하여 금당 1칸과 불좌를 만들고 5층 석탑을 세웠다는 사실을 적고 있으며, 구리와 놋쇠를 도합 62근을 사용하였다고 했다. 이밖에 향합 등 절에 들인 물목과 재료의 사용량을 적고 불사에 참여한 주지 이하 스님들의 법계와 법명도 적어 놓았다 이 탑이 속했던 사찰은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구전으로 천주사(天柱寺), 천죽사(天竹寺) 또는 죽암사(竹岩寺) 등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2
만어사 삼층석탑(萬魚寺三層石塔)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문의처
만어사
소개
밀양시 만어사(萬魚寺)에 있는 단층기단에 3층 탑신을 건립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만어사는 46년(가락국 수로왕 5년) 수로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1180년(고려 명종 10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또한 만어사의 창건에 관련된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서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서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수로왕은 주술로써 이 일을 금하려 했으나 불가능하자 예를 갖추고 인도 쪽을 향하여 부처님을 청했다. 부처님은 신통으로 왕의 뜻을 알고 6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하여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 수로왕이 이를 기려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도 전한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 있는 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많은 종류의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바로 이 절이었다. 그 뒤 왕자는 큰 미륵돌로 변했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었다고 한다. 현재 만어사의 미륵전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하며, 사람들은 이 바위에 기원하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륵전 아래에는 무수한 돌무덤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만어석(萬魚石)이라고 하며, 두들기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鍾石)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현재의 법당이 있는 곳과는 떨어져 있으나, 석탑 뒤편에 건물터로 추정되는 넓은 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위치로 추정된다. 탑의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어 있다. 지대석의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면석 받침을 마련하고 있는데, 아래 1단의 각형은 높게, 위 1단의 각형은 낮게 조성하였다. 단층인 기단부의 면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우주만 모각되어 있고 탱주는 없다. 대신 기단부의 높이에 비하여 양 우주가 큼직한 편이다. 갑석은 크기가 같은 2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에 각형 1단의 부연이 있고, 위에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있으며 윗면으로는 아주 완만한 경사가 져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모두 각각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 층의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기단 면석의 우주처럼 우주의 폭이 탑신에 비하여 넓은 편이다. 각 층 옥개석 아래에는 3단의 옥개받침이, 위에는 각형 1단의 탑신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나 3층옥개의 탑신받침만 각형 2단이다. 처마선은 상·하단선이 평형을 이루다 전각 부분에서 상단선만 심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낙수면은 볼록한 곡선 모양의 급한 경사를 이루다가 중간부분에서 다시 오목한 곡선 형태로 바뀌어 처마 부분에서는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었으며, 현재는 보주 모양의 석재가 있으나 후에 보수된 듯하다. 이 탑의 양식적 특징은 첫째, 기단이 단층기단인 점이다. 이러한 점은 고려시대 석탑의 기단 형식이 거의 단층을 이루고 있는 현상과 동일하다.
3
표충사 삼층석탑(表忠寺三層石塔)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처
표충사
소개
이 탑은 표충사 경내에서 사천왕문(四天王門)을 들어서면 만일루(萬日樓) 앞마당에 있는데, 기본적인 양식이 신라통일시기의 석탑 유래를 따르고 있는 하층 기단을 생략한 단층기단(單層基壇)의 이형석탑(異形石塔)이다. 2단으로 이루어진 지대석(地臺石)은 모두 7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24㎝정도의 제법 높은 2단의 각형 받침이 마련되고, 그 위에 기단부를 형성하므로써 상 ․ 하층 기단의 효과를 살리고 있으며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개씩의 돌로 되어 있다. 옥신은 대체로 높은 형태를 보이고, 옥개석은 첫층부터 차례로 체감되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고 낙수면 은 우아한 경사를 이루었다. 옥개석의 머리에는 풍경(風磬)을 달아 운치를 살렸고, 상륜부(相輪部)에는 1m 남 짓한 찰주(刹柱)가 아직도 남아있고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앙화), 보륜(보륜), 보개(보개), 수연(수연) 등이 있으나 그 가운데는 뒤에 보수된 흔적도 남아 있다. 이 탑 앞에는 거의 같은 시기로 보이는 석등(石燈)한 기가 있으나 지금의 위치는 본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고, 조선조 숙종 3년(1677년)에 작성된『영정사고적기(靈井寺古蹟記)』에 의하면 현재의 표충사가 신라 진흥왕 4년(829년)에 인도에서 온 황면선사(黃面禪師)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탑의 조성연대도 이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4
숭진리 삼층석탑(崇眞里 三層石塔)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삼랑진읍 숭진리 417-2
문의처
밀양시
소개
이 탑(塔)이 속했던 사찰의 조성년대는 알 수 없으나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층(單層) 기단(基壇) 위에 이루어진 3층석탑(三層石塔)이다. 1966년 문화재지정 신청을 위한 실측조사 당시에만 해도 지면 위에 돌무더기가 쌓여 기단(基壇)의 면석(面石) 이하는 매몰(埋沒) 되어 있었고 3층 옥개석(屋蓋石)은 땅위에 떨어져 팽개쳐져 있었으며 탑(塔)도 북쪽으로 기울어져 보존상태가 매우 나빴으나 지면을 정리하고 해체 복원(復元) 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지대석(地臺石)은 4매로 구성하였고 기단(基壇)의 면석(面石)도 4매의 판석(板石)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왼쪽 면석의 한 하부 귀퉁이에 석재로 목침형(木枕形) 받침이 끼워져 있는 것이다. 탑신부(塔身部)의 옥신(屋身)에는 장식이 없고, 각층의 높이는 55cm, 20cm, 7cm로 매우 심한 체감비율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屋蓋石)의 받침은 각층 모두 3단으로 주각되었고 추녀밑은 직선을 이루었으며 낙수면(落水面)은 비교적 급한 경사를 이루었는데 옥신석(屋身石) 윗면 중앙에는 직경 7cm, 깊이 10cm의 원형 찰주공(刹柱孔)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옥개석(屋蓋石)의 찰주공(刹柱孔)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앙화(仰花), 보륜(寶輪)등의 장엄(莊嚴)을 갖추었던 석탑(石塔)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5
무봉사석조여래좌상(舞鳳寺石造如來坐像)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밀양시 영남루1길 16-11(내일동)
문의처
무봉사
소개
무봉사(舞鳳寺)는 영남루(嶺南樓)의 전신인 영남사(嶺南寺)의 부속 암자로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의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고 다만 이 불상(佛像)과 광배(光背)의 조각수법과 양식이 신라통일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됨에 따라 신라시대의 명찰(名刹)로 전해지고 있는 영남사(嶺南寺)의 유물로 추정된다. 화강석(花崗石)으로 만들어진 이 석불(石佛)은 상호(相好)가 원만한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으로서 나발(螺髮) 위의 육계(肉계)가 큰 편이고 두 눈섭 사이에는 백호(白毫)를 끼웠으며, 길상좌(吉祥坐)로 가부좌를 하고 항마촉지(降魔觸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광배석(光背石)은 불상과 같은 재질의 화강석(花崗石)으로 된 보주형광배(寶珠形光背)인데, 상부가 앞쪽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져 있고 당초문(唐草文), 연화문(蓮花文), 화염문(火焰文)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광배(光背)의 뒷면에는 연화좌(蓮花坐) 위에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을 양각(陽刻)하였는데 소발(素髮)의 머리에 상호(相好)는 원만한 편이나 많이 마멸(磨滅)이 되어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인상이 뚜렷하지 못하다. 이 불상(佛像)의 특징으로는 채색(彩色)을 한 흔적이 있어서 연구(硏究)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6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처
표충사
소개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은 1995년 실시된 삼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기단 적심부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기비>(1491년)를 포함하고 있다. 불상 중에는 머리와 대좌 등이 파손되어 완전하지 못한 것도 있으나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시기를 달리 하는 많은 불상이 일괄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석탑 내에 사리장엄구 이외 불상을 봉납한 사례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식과 양식, 그리고 시대별 층위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이다. 또한 이는 통일신라 9세기 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실증적 자료이기도 하다.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불상 및 청동탑편,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 상평통보 등은 금동불상 연구와 석탑의 공양의식, 중수사례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므로, 일괄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7
밀양향교 대성전 (密陽鄕校 大成殿)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향교3길 19 (교동)
문의처
밀양향교
소개
「밀양향교」는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를 보이는 병렬식 향교의 대표사례로 경상남도 30여개 향교 가운데 병렬식배치를 취하고 있는 향교는 거창향교를 비롯하여 4곳으로 직렬식배치법의 다른 향교와 차별성을 보이며, 특히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향을 달리하는 경우는 밀양향교가 유일합니다. 「밀양향교 대성전」은 초창은 뚜렷하지 않지만, 임진왜란으로 향교의 전각들이 모두 소실된 후 1602년에 현 위치로 향교를 옮겨 중건하였습니다. 이후 1617년에 현 명륜당 동남쪽 아래로 이건하였다가 1820년에 명륜당의 서쪽인 본래 위치(현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이건하면서 17세기의 공포는 배면에 19세기의 공포는 전면에 사용하여 200년이란 시차를 두고 조선중기와 후기의 시대적 건축기술의 흐름과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어 건축양식사 차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밀양향교 대성전」은 임란 때 소실된 후 1602년에 중건되어 건립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1617년, 1820년 2차에 걸쳐 이건을 하였으나, 승두를 이용한 건축가구법과 기둥, 익공, 창호 등에서 구재를 재사용하여 조선 중기의 고식의 기법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8
밀양향교 명륜당 (密陽鄕校 明倫堂)
분류
국가지정문화재
위치(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향교3길 19 (교동)
문의처
밀양향교
소개
「밀양향교 명륜당」은 경남지역 향교 건축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건물로, 임란 때 소실된 것을 1618년에 중건한 것으로 조선 중기 명륜당 건축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됩니다. 규모가 큰 명륜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평면을 잘 보존하고 있고, 익공형태가 17세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규모에 따른 구조적 보강법도 경남지역 명륜당 건물에서 흔하지 않는 사례입니다. 명륜당은 1618년에 중건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음에도 고졸한 형식의 외1출목 이익공 형식으로 연봉이나 연화로 장식되지 않은 쇠서의 형태와 대청 배면에는 고식 창호의 흔적, 창방의 모접기기법 등 고식의 치목기법이 남아있고 다양한 반자형식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타 명륜당과 비교해도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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