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면은 밀양시 서남쪽에 위치하며 남으로는 창원시와 서로는 창녕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음. 1895년(고종32년) 초동면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낙동강, 옛 수산지, 청도천유역에 위치하여 인류의 주거지로 적당하여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문화가 발달되었으며 그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음. 초동면은 조선초기 문인, 학자, 정치가로서 명망이 높았던 춘정변계량선생의 출생지이며 밀양지역 최초의 향약인 구령동안이 시행되었던 고장으로서 충.효.예의 덕풍을 사모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져 오는 예향이다. 지방도 1008호선이 면의 중앙을 지나가 국도 25호선 및 부곡온천과 연결되고 지방도 1022호 선이 창원시와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여 인근 부산, 마산, 창원과 30분 거리에 있어 위성전원도시로 성장할 잠재력이 무한한 곳임. 낙동강유역의 비옥한 토지에서 저농약 유기농법으로 생산하고 있는 단감, 청량풋고추, 수박이 특산물로 잘 알려져 있음.
면소재지로 마을 앞으로는 지방도 1008호선이 지나가고 초동특별농공단지가 있다. 마을입구에는 취원당 조광익의 효행과 우애를 기념하는 경남도지방기념물 제120호인 강동구가 있으며
오봉서원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고 취원당 조광익선생과 취원당의 증조이신 청백리 정우당 선생의 향사를 받들고 있다.
범평마을
오방리와 함께 초동면의 행정중심지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범평리의 법정리를 이루었다. 민속품을 전시한 미리벌민속박물관이 있고 지석묘가 있으며 이 곳에서 출토된 마제석검이 남아 있다. 오방마을과 더불어 정주생활권 개발사업이 시행되어 생활기반조성이 완료된 마을이다.
명포마을
면소재지에서 1.2km떨어진 평야지 마을로서 마을이 단감과수원에 묻혀 있는 아름다운 동네이고 미곡과 단감이 주소득원이며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
명포의 옛이름은 지금의 초동들이 늪지대일 때 마을의 앞 갯벌이 아름답다고 하여 벌미 혹은 벌음이라 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벌미라고 부른다.
신포마을
면소재지에서 약1km떨어진 평야지 마을로서 1976년 명포에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며 미곡과 단감이 주소득원임
"작은벌미"라고도 부르며 "범죄없는 마을"로 지정된 인심이 좋은 살기 좋은 마을이다.
성암마을
대구획 경지정리가 완료된 평야지 마을로서 보리 집단 재배지이며 초동특별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암은 마을 한복판에 별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마을앞에는 옛날 갈밭이었던 곳을 농경지로 개발하여 137ha의 넓은 성암들을 만들었는데 이곳은 보리집단 재배지로서 밀양지역의 보리채종포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곡마을
이 마을은 옛부터 "한실"이라 불렀으며"한실"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대곡으로 되었다.
전형적인 평야지 마을로서 미곡위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시설하우스 작물로 수박을 많이 재배하여 농가소득이 높은 지역이다.
예촌마을
주변의 산세가 조개처럼 생겼다고 "조개만리"혹은 예촌으로 불리우며 평야지 마을로서 시도16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고 단감 및 미곡이 주소득원이다.
수리시설이 발달된 비옥한 초동들을 바라보고 있어 농사짓기에 매우 편리하다.
차월 마을
차월마을은 1961년도에 반월에서 분동되어 현재의 행정리를 이루고 있으며 낙동강에 인접하여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지를 이용하여 미곡 및 시설하우스 수박이 주 소득원임
옛날 가락국 왕이 수레를 타고 지나 갔다고 하여 "수레마"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반월 마을
낙동강에 인접해 있는 마을로서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지를 이용하여 감자,시설하우스 수박등 특작을 많이 재배하고 그 재배기술이 뛰어난 마을이다.
옛날 낙동강이 수상교통으로 많이 이용될 때에는 상당히 번화한 마을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반월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가락국왕이 "이궁대"에 왔다가 수레를 타고 차월고개에 와서 보니까 이 마을의 지세가 반달처럼 생겼다고하여 반월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이 없지만 청도천변에 위치하였던 "장재늪"에 얽힌 설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성북 마을
지명의 유래는 신라왕이 임어하여 순행유연하였던 "이궁대"의 뒤에 있다고 해서 "잣두"라고도 하며 "잣두"의 한자표기가 성북으로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지방도 1022호선이 완공되면 교통망이 매우 편리한 마을이 될 것이다.
검산 마을
이 마을은 초동저수지를 축조할 때에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마을앞으로 초동천이 흐르고 미곡 및 참외, 수박의 집단재배지이다.
단일마을으로 여러성씨가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다.
검암 마을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현재의 법정리를 형성하였다.
마을 동쪽으로 옛 국농소의 넓은 들판이 있으며 지방도 1008호선이 마을앞으로 지나가 교통이 매우 편리한 마을로서 4개의 자연마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선제 박수견의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검암의 자연마을인 모선동의 지명이 유래되어 현재까지 모선동으로 불리우고 있다.
곡강 마을
하남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서 지방도 1008호선이 지나가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마을뒤에서는 낙동강의 줄기가 굽어져 흐르고 있는데 마치 곡수의 풍치를 방불케한다고 하여 곡강으로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라 지증왕때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이 마을 뒤에 있는 산에 진을 친 곳이 있는데 법흥왕때에는 그 곳에서 가락의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을 하였고 누세에 걸쳐 신라왕이 이 곳으로 임어하여 순행유연한 장소로 이용한 "이궁대"라는 유적이 있다.
벼 직파 재배기술이 뛰어난 마을로서 벼 직파 집단 재배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두암 마을
옛 국농소의 넓은 들을 앞에 두고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있고 단감과수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단감과 미곡이 마을의 주소득원이다.
신라왕이 이궁에 와서 이 곳 수산제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머물던 자라목의 유적이 전해지고 있으며 주위에 패총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금포 마을
이 마을은 옛날에 수산제의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수산제가 개발되기전에는 마을앞까지 늪지대가 형성되어 많은 연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 연꽃이 만발하면 그 향기가 멀리 무안면 내진까지 이르렀다고 하며 연꽃이 활짝 핀 모습이 금빛 찬란한 포구와 같다하여 금포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 주위에 패총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어 수산제 주변에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문화가 태동되었다..
오휴자 안신선생이 관혼상제 의례에 관하여 1629년 저술한 "가례부췌"의 책판 131책이 지방유형문화재 제26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성만 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성만리라는 법정리를 이루있다.
초동중학교 뒤 통암산에는 고려 인종의 태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구령 마을
뒤로는 초동의 진산인 덕대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두루 감싸고 앞으로는 저멀리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탁트인 동네로서 지세가 거북과 닮았다하여 구령이라 부르며, 춘정 변계량선생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덕대산의 정상에는 3~4세기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덕대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또한 주민들이 "처녀무덤"이라 부르는 곳이 있어 장가못간 총각들이 벌초를 하면 그 해를 넘기지 않고 장가를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무덤이 있다. 옛부터 약물로 유명한 폭포수가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절터로 전해오는 곳에 덕산사라는 사찰이 있어 이 곳에서부터 덕대산 정상과 종남산을 잇는 등산로는 매우 운치가 있어 등산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신호 마을
덕대산이 마을뒤를 포근히 감싸고 봉황리에서 발원한 초동천이 낙동강으로 유유히 흘러가며 사방으로 탁트인 마을로서 교통이 매우 편리한 마을이다.
춘정 변계량선생이 유능인사 교육과 회의장소로 삼았고 또한 영남일대의 통신망으로 이용한 봉수대가 있었던 동대산의"동대"가 전해지고 있다.
경남도 문화재자료제27호인 변씨삼현비각과 동자료제285호인 모선정이 있으며 경남도유형문화재351호인 송은문집책판이 보존되고 있다.
40여 ha의 면적을 자랑하며 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수질 좋은 초동저수지는 낚시터로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신월 마을
지방도 1008호선과 시도9호선에 접한 마을로서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곡과 단감이 주 소득원이다.
신월의 옛지명은 "신곡"이며 마을 주변의 지세가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신월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손 마을
덕대산아래 위치한 중산간지 마을로서 밀성손씨.김해김씨,달성 서씨등 세 성씨가 모여 살았다고하여 삼손의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시도 9호선이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1999년도에 경지정리를 완료하여 농업기반시설이 정비된 지역이다.
장송 마을
솔안,외송,장터의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효자 통정대부정수룡지려가 있어 효의 귀감이 되고 있는 마을이다.
와지 마을
이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법정리인 봉황리에 속하였다.봉황리는 마을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봉황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하여 봉황리라는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와지 마을의 옛이름은 "상양곡리"였고 이 것이 나중에 와지로 바뀌었다. 와지라고 하는 것은 방동쪽에서 보면 마치 배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지명을 붙였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며, 와지 신촌 사거리의 3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방동마을
와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초동면에서 해발이 제일 높은 곳이다. 교통이 발달되지 아니한 옛날에는 방동고개(일명 방울재)를 넘어서 밀양으로 통행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므로 그 당시에는 상당히 번화하였으나 지금은 작은 산골마을로서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방동과 부북면 사포리를 잇는 임도가 개설되어 등산로와 드라이브 코스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봉대 마을
봉대의 옛이름은 지대리였다.옛날에 이 마을주위에 닥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은 안지대,바깥지대,황대,새실,제비골의 5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칠성바위라 부르는 지석묘군이 있다.